지난 2월 저희 어머니 장례를 치른 직후부터 최근까지 아버지께는 그야말로 온갖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방아쇠 수지부터 시작해 다리의 멍과 결절, 요통, 목어깨 및 옆구리의 통증, 점액변까지 말이죠. 제가 갈 때마다 치료를 해 드리기도 하고, 다른 병원에 가시도록 권해 드리기도 하는데 계속 해서 새로운 증상들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점액변으로 걱정을 많이 하셔서 인근의 병원에서 분변검사까지 받으시고(고령이라는 이유로 대장 내시경은 안 해 주려고 하더랍니다),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제가 동행을 했습니다. 결과가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아버지께서 계속 불편을 호소하시니 의사 선생님 왈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혹시 최근에 스트레스 같은 건 없으셨나요?"라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런 건 없어요." 아버지의 단호한 대답이 이어졌는데, 옆에 있던 저로서는 좀 의아하더군요. '평생을 함께 해 온 배우자가 사망했는데 멀쩡할 리가.' 하며 말이죠. 굳이 말을 덧붙이진 않고 있다가 의사 선생님의 "일단 유산균과 정장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한 번 드셔 보세요."라는 말씀을 듣고 진료실을 나섰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대장 용종이 있을 때도 똑같이 점액변이 나왔다며 의구심을 가지셨으나, 당장 큰 일 나는 거 아니니 우선 드셔 보시고 잘 안 나으면 장을 건강하게 하는 환약을 처방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지요. 다행히 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요즘은 더 이상 점액변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또다른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과도한 스트레스는 우리의 몸에 다양한 증상들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나 배우자의 사망이라는 사건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인데, 아버지께서는 그 거대한 고통을 직면하지 않고 억압하고 회피함으로써 스트레스가 없다고 애써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과 달리 몸은 거짓말을 못하고 신체 곳곳에 여러 흔적들을 남기고 우리는 그것을 증상으로 지각합니다.
누구나 큰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거나 혹은 큰 일은 아니더라도 자잘하게 여러 일로 오랜 기간 신경을 쓰다보면 본인은 미처 의식을 하지 못하더라도 이와 같이 신체적 이상이 유발되곤 합니다. 저 역시 지금껏 살아오며 스트레스로 인한 별별 증상들을 다 겪었는데, 학창시절에는 시험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호흡이 힘들어지거나 원형탈모, 황한(黃汗, 누런 땀), 과민성대장 등으로 고생을 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혈뇨를 보기도 하는 등 여러 신경성 증상들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니 병원 검사상 문제가 없고 스스로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을 하지 하는데도 몸에 지속적으로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면, 자신의 마음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더불어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