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간 성실하게 진료해 준 의사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도 돌아가시고 나서야 치료에 있어 놓치고 아쉬웠던 부분이 떠올랐으니까요.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잡혀 있던 다음 예약일에 동생과 함께 가서도 몇 가지만 확인한 후에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다만 검사에서 좋아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려 합니다. 검사에서 좋아진다는 것이 정말 우리의 몸이 좋아진 것인가 하고 말이죠.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 그리고 숫자에 집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의료 영역에서도 기능적인 면이 등한시되고 대신에 눈으로 봤을 때 염증이 없어져야 하고 암세포가 사라져야 하고, 혈액검사나 소변검사에서도 수치를 개선하는 데에만 집중하곤 합니다.
그런데 문제점이 눈에 안 보인다고, 수치가 좋아졌다고 정말 그 사람의 건강이 좋아진 걸까요? 예를 들어 만성적인 소화불량에 시달린다고 위 내시경상 보이는 위장의 염증만 없앤다고 소화가 잘 될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위염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분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위염 때문에 소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문제가 있으니까 소화도 안 되고 염증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진짜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는데 겉으로 보이는 염증만 해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진료중에 환자분들의 혀 상태를 보는 설진(舌診)을 자주 합니다. 그 중에는 백태가 많이 껴 있는 분들도 수두룩하지요. 칫솔로 혀의 백태를 닦아내 봤자 어차피 또 생깁니다. 백태가 생기는 진짜 원인을 해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화기를 비롯한 내장의 기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백태가 끼는 것이라 속을 치료해야 백태가 안 생기는데, 겉으로 보여지는 백태를 제거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지요.
혈액이나 소변 검사상의 수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적절한 수치가 유지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약에 의해 억지로 유지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고지혈증약을 먹으면서 중성지방이나 LDL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정말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약들은 고지혈증을 치료하는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수치를 유지하게끔 할뿐이죠. 그러니 약을 중단하면 수치는 다시 오릅니다.
우리 몸에서 세포막을 만들고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콜레스테롤이 높아진 원인이 있을 텐데, 무조건 낮추기만 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몸에 탈이 나게 됩니다. 혈압이든 당뇨든 고지혈증이든 수치를 잘 조절했는데도 갑작스레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요. 그러니 최소한의 약 복용을 통해 수치를 관리하는 건 괜찮지만 근본적으로 음주, 흡연, 비만, 스트레스, 수면장애, 음식, 운동 등의 개선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지, 약 복용만으로 안심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치료(治療)는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함'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건강에 문제가 없어야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약은 도와줄 뿐, 건강은 본인이 챙겨야 합니다.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이 정말 치료제인지, 아니면 단순한 조절제인지를 잘 파악해 약에만 의존하지 않는 진짜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