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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해 드립니다.

박원장의 건강칼럼

제목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대한 단상

거의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른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그 두 번째 시즌이 폭발적인 관심 속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 콤비의 예의 그 착한 드라마들 중에서도 특히나 더 사람들의 마음을 당기는 요소는 주인공(실은 비단 주인공 5인방뿐만 아니라 율제병원에 근무하는 수많은 의료인들)들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진정한 의사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주인공들이 신은 아니기에 모든 환자들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현대 의학에 있어 최고 경지에 다다른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진 것은 물론, 환자들을 향한 대단한 애정과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환자 혹은 보호자 입장에 있는 시청자로서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 5인방은 모두 외과의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더욱 극적으로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대부분의 메디컬 드라마 주인공이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인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런 의사들이 현실에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없다기보다는 만나보지 못해봤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입니다. 김기려 박사님이나 지난 연말에 소천하신 한원주 선생님 같은 의사들이 실존하기는 했으니까요. 그런데 젊고 인물 좋고 실력에 인성까지 다 갖춘 의사가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의 베스트 프랜드가 한 병원에 있는 현실이라니, 차라리 판타지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왜 그런 의사들을 만나기 어려운 걸까요? 저는 사람과 시스템,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정부라도 공권력을 함부로 행사할 수 없는 곳이 종교시설, 학교, 그리고 병원입니다. 그만큼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직무가 성직자나 교사 혹은 교수의 직무에 못지 않게 인류애를 실천하는 숭고한 일이라는 데 사회적 동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니 심지어 참혹한 전쟁에서도 다친 적군을 보면 치료해 주는 것이 의료인으로서 본분을 다하는 일일 테지요. 이렇게 다른 직업과 달리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 대한 긍휼함과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사회적 사명감과 소명 의식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들이 과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못 하고 있지만, 그 전까지 저는 저희 한의원에서 인근 학교 청소년들의 진로직업체험 멘토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단순히 한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흥미로 찾아오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겐 늘 강조하는 것이 의료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예전처럼 의사가 떼돈 버는 시대도 지났고, 돈 많이 벌고 싶으면 사업을 해야지 괜히 남의 목숨 담보로 의사질 하면 안 된다고 말이죠. 물론 저 역시 처음 한의대를 지망했던 초심을 잘 지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물론"이라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 개인이 소명 의식이 있더라도 의료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슬의생' 5인방처럼 환자 한 분 한 분께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진심을 다하는 진료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풀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병원도 운영을 하려면 수익이 나야 하고, 수익이 나려면 우리나라의 저수가 정책상 일반적인 병원이라면 많은 환자들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학창시절 성적으로 줄을 세우듯 의사들을 진료수입으로 줄을 세우는 병원도 있을 정도이니 참으로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전에도 몇 번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아내의 건강이 안 좋다 보니 한 달에도 여러 번 서울대병원의 다양한 과를 방문하곤 하는데, 어떤 교수님의 경우 외래진료에서 4개의 방을 동시에 왔다갔다 하시고, 다른 교수님들도 한 환자당 3분이면 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환자들이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의사들이 '슬의생' 5인방처럼 여유있게 환자들을 진료하려면 그만큼 더 많은 의사를 배출하고, 국민들의 건강보험료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올려야 하는데 이는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서 쉬운 일이 아니기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만약 '슬의생'5인방이 배우자와 가족들이 있다면 지금처럼 율제병원이라는 행성을 도는 위성처럼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퇴근했다가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캠핑을 갔다가도 병원으로 달려가는 배우자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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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한담한의원

등록일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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