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한의원에서도 정신과 치료를 해요?"라고 의아해하며 묻습니다. 그만큼 한의원의 정신과 치료가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겠지요. 하기야 아직까지 한의원은 어디 다쳤을 때 침 맞으러 가거나 보약 지으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은 상황에서 그다지 의외의 반응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가 대 조선 정책의 일환으로 한의학을 말살하려고 하면서 한의학의 설 자리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한의학은 실상 내과, 부인과, 소아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등 온갖 질환에 대해 수천년간 우리 민족의 주요 의학이었음을 감안해 보면, 정신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노하우가 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동의보감 등 옛 문헌에 나와있는 심리치료 기록들을 보면 현대의 심리치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 정도이니까요.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불안'이 최상위권에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할아버지가 살던 때나 아버지가 살던 때나 자식이 살던 때나 큰 변화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져 특별히 예측이 어려울 상황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150~200년 정도 걸렸던 산업화를 50년만에 이루면서 압축성장이 이루어졌고,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 날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결국 예측하기 어려운 삶에서 불안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하루하루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현대인들은 심한 불안을 많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데,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만큼 필요 이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정신질환을 불안장애라고 합니다.
의학적으로 불안장애를 좀 더 세분화하면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강박장애, 각종 공포증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불안장애라고 인식하는 질환은 범불안장애와 유사한 경우가 많으며, 일명 연예인병으로 유명세를 탄 공황장애는 불안이 극심해져 죽을 것 같은 공포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강박장애는 강박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게 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해서 결국 다시 하게 되는 양상을 보이며 괴로워합니다.
그렇다면 한의원에서는 이러한 불안장애들을 어떻게 치료하고 있을까요? 모든 치료가 그러하듯 우선 불안의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지어는 특별한 일도 없고 자기가 왜 불안한지도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는데, 증상의 급만성을 떠나 여유로운 환경에서 충분한 상담을 통해 불안이 야기된 원인을 찾습니다.
이후 신체적, 정신적 증상들을 종합해 적절한 치료 계획을 세우는데, 대체로 한약과 상담을 위주로 하며, 침, 약침 등을 보조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한약뿐 아니라 상담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무의식 중에 저항하고 외면하게 되지만 그렇게 해서는 불안이나 공포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고 충분히 경험할 때까지는, 아무리 모른 척 하더라도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힘을 키워 우리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가기에, 상담과 지지를 통해 그 감정들을 인식하고 직면함으로써 불안을 점차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불안장애의 치료 기간은 케이스마다 천차만별인데, 범불안장애는 1달 내외의 짧은 기간 안에 빨리 해결되기도 하고, 공황장애는 3~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항불안제를 끊고 치료를 종결하더라도 평소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후의 삶을 훨씬 더 자신 있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불안장애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이러한 불안장애를 한의원에서 어떻게 치료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더이상 불안과 두려움에 떨지 않고 당당하고 용감하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한의학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